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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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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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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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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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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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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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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𓃗 재료↓
캔버스, 아크릴 미디엄, 흑연, 아크릴 물감, 아크릴 잉크, 왁스 처리된 실, 유화 물감, 알루미늄 판재, 아연 나사, 스테인리스 그로멧, 나무
𓃗 크기↓
가변형
𓃗 말들↓
여전히 자립의 시도. 여전히 몰딩 페이스트. 여전히 말 더듬기. 말이 있어야 말을 날려 보낼 수 있다.
이제 회화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영수증. 쿠팡이츠. 맥도날드 스티커. 영수증 기계의 머리에서 줄줄이 나와 매달려 있는 영수증들. 나는 어떤 소비를 하는가. 대부분의 영수증은 몰딩 페이스트나 젤 미디엄과 바로 접촉해 버리면 잉크가 거의 날아가 버린다. 왜? ph 때문에? neutral ph adhesive를 사용하면 전혀 날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adhesive와 몰딩 페이스트를 2:1의 비율로 섞어 첫 겹을 쌓기 시작했다. 말을 얼만큼 날리고 얼만큼 남길지 정하기.
요리. 라이언이 내 그림 중 하나를 보고 이건 이제 팔레트로 사용하라고 했던 게 생각난다. 마구 조지기. 의도된 행동보다 자연스러운 흔적이 더 필요할 때. 이것저것 붙이며 그리던 그림에 프레퍼스에서 포장한 청양 들기름 파스타 간장 소스를 쏟은 뒤, 그 그림은 팔레트로 사용하기로. 예림이와 만든 간장 양념의 돼지 목심 위에 청양 고추를 가위로 잘라 뿌렸다. 튀어나온 고추 씨앗 다섯 개. 다운타우너 햄버거의 참깨 빵에서 떨어져 나온 참깨 12개. 자취생이 사 놓은 양파에는 필연적으로 싹이 튼다. 양파싹 송송 썰어넣기. 이것들을 붙이고 몰딩페이스트로 덮고. 이 행위는 영수증으로 내가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껴진다.
창인과 최근에 했던 대화. 개념과 욕망이 있다고 하자. 우리는 욕망을 설명하기 위해 개념을 만들려고 애쓰지만 여전히 개념의 그물에 걸리지 않은 (혹은 그물망 사이로 삐져나오는) 욕망이 있다고 느껴진다. 결국 개념을 포기한다. 그래서 우리는 언어를 사용해 말을 붙였다가 결국에는 말을 다시 추상화하는 식의 행동을 해 왔다. 번역의 포기, 구린 번역도 비슷한 느낌. 개념에 비관하여, 개념을 해체하는 것을 긍정하기. 언어하기. 나는 물질을 포기할 수 없다. 우선 말을 열심히 붙인 후, 붙였던 말을 싹 지우고 나면 결국 물질이 남는다. 물질을 육체로 감각한다. 물질은 욕망인가? 우선 창인이 사용한 욕망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다만, 내가 [말과 물질]로 나누어 생각하던 것을 창인은 (얼추) [개념과 욕망]으로 생각해 오고 있었다는 것. 그렇다면 [말]과 [개념]이 닿아있는 방식으로 (얼추) [물질]과 [욕망]도 닿아있는 것 아닐까. 아무튼 우리의 결론. 말을 붙인 후에야 말을 지울 수 있다.
오늘 캔버스를 하나 짜면서 생각했다. 물질이 좋다.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준비를 하기 위해서 캔버스를 왁구에 스트레치 하고, 그 위에 프라이머를 여러겹 바른다. 이건 그림을 그리기 위한 준비과정인데, 나는 그림을 그릴 생각이 없다. 캔버스를 짜고, 그 위에 몰딩 페이스트를 바른다. 바르고 이쁘게 사포질한다. 만져보고. 다 했다는 느낌이 드는데, 다 한 것 같진 않다. 흑백 요리사에 잘 구운 보섭살 하나 들고 나와 승부하던데. 잘 지은 밥 한 공기를 들고 나가면 어떻게 되지? 짜놓은 캔버스를 보며 기가 막히게 지은 밥 한 공기 같다고 생각한다. 문득 캔버스를 un-짜야한다는 생각. 왁구에 짜고 프라이머를 바른 캔버스에서 타카심을 하나하나씩 뽑은 후 펼쳐보니 참 예쁘다. 문득 이걸 다른 왁구에 re-짜야한다는 생각. 그러면 작품으로 칠 수 있나? stretch, prime, unstretch, restretch. 뭘 한 거지?
이것과 비슷한 일을 요즘에 다른 방식으로도 하고 있었다. 예전에 몰딩 페이스트와 물감으로 캔버스에 완성한 작업들을 자르고 있었다. 길게 잘라 서로 세로로 이어붙여 더 긴 줄을 만든다. 물론 가죽을 바느질하듯 이어 붙였다. 그 긴 띠를 캔버스 왁구에 사용하는 나무(네 쪽 중 하나, 그니까 사실상 그냥 각목 하나)에 길게 붙인다. 벽에 기대어 주루루루 세워 놓고 싶어져서 하나 더 만들었다. (여기서 여전히 질문: 평면 회화는 벽을 필요로 하는가…?) 이 과정도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고, 나무에 붙여 회화라고 주장했던 것을, 다시 해체하여 자르고, 나무도 자르고, 해체한 것들을 다시 이어 붙여, 새로운 것을 다시 만든다. 같은 형식인데, 뭐가 달라졌나? 더 단순하게 해놓고 이것도 회화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 건가? 비빔밥을 비볐다가, 다시 재료별로 골라내고, 조금씩 다시 섞어 김밥을 만든 후, 이것도 비빔밥이다, 말하려는 걸까? 나는 내가 뭘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그럼에도 자꾸 말을 해야 한다. 창인과 주고 받았던 말도 날아갈 거 다 날아 갔고 이상한 것만 남았다. 이상한 걸 더 남기려면 더 말해야 한다.
한나 상에게 답례로 보내야 하는 책을 어떻게 만들지도 계속 고민해 본다. 영수증이면 충분하다. 글이 적혀있고, 접혀서 펼칠 수 있으면 그만이고. 편지도 끼워넣어서. 그럼 영수증을 반 자르고, 사이에 종이를 끼워서 바느질 하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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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자립의 시도. 여전히 몰딩 페이스트. 여전히 말 더듬기. 말이 있어야 말을 날려 보낼 수 있다.
이제 회화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영수증. 쿠팡이츠. 맥도날드 스티커. 영수증 기계의 머리에서 줄줄이 나와 매달려 있는 영수증들. 나는 어떤 소비를 하는가. 대부분의 영수증은 몰딩 페이스트나 젤 미디엄과 바로 접촉해 버리면 잉크가 거의 날아가 버린다. 왜? ph 때문에? neutral ph adhesive를 사용하면 전혀 날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adhesive와 몰딩 페이스트를 2:1의 비율로 섞어 첫 겹을 쌓기 시작했다. 말을 얼만큼 날리고 얼만큼 남길지 정하기.
요리. 라이언이 내 그림 중 하나를 보고 이건 이제 팔레트로 사용하라고 했던 게 생각난다. 마구 조지기. 의도된 행동보다 자연스러운 흔적이 더 필요할 때. 이것저것 붙이며 그리던 그림에 프레퍼스에서 포장한 청양 들기름 파스타 간장 소스를 쏟은 뒤, 그 그림은 팔레트로 사용하기로. 예림이와 만든 간장 양념의 돼지 목심 위에 청양 고추를 가위로 잘라 뿌렸다. 튀어나온 고추 씨앗 다섯 개. 다운타우너 햄버거의 참깨 빵에서 떨어져 나온 참깨 12개. 자취생이 사 놓은 양파에는 필연적으로 싹이 튼다. 양파싹 송송 썰어넣기. 이것들을 붙이고 몰딩페이스트로 덮고. 이 행위는 영수증으로 내가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껴진다.
창인과 최근에 했던 대화. 개념과 욕망이 있다고 하자. 우리는 욕망을 설명하기 위해 개념을 만들려고 애쓰지만 여전히 개념의 그물에 걸리지 않은 (혹은 그물망 사이로 삐져나오는) 욕망이 있다고 느껴진다. 결국 개념을 포기한다. 그래서 우리는 언어를 사용해 말을 붙였다가 결국에는 말을 다시 추상화하는 식의 행동을 해 왔다. 번역의 포기, 구린 번역도 비슷한 느낌. 개념에 비관하여, 개념을 해체하는 것을 긍정하기. 언어하기. 나는 물질을 포기할 수 없다. 우선 말을 열심히 붙인 후, 붙였던 말을 싹 지우고 나면 결국 물질이 남는다. 물질을 육체로 감각한다. 물질은 욕망인가? 우선 창인이 사용한 욕망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다만, 내가 [말과 물질]로 나누어 생각하던 것을 창인은 (얼추) [개념과 욕망]으로 생각해 오고 있었다는 것. 그렇다면 [말]과 [개념]이 닿아있는 방식으로 (얼추) [물질]과 [욕망]도 닿아있는 것 아닐까. 아무튼 우리의 결론. 말을 붙인 후에야 말을 지울 수 있다.
오늘 캔버스를 하나 짜면서 생각했다. 물질이 좋다.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준비를 하기 위해서 캔버스를 왁구에 스트레치 하고, 그 위에 프라이머를 여러겹 바른다. 이건 그림을 그리기 위한 준비과정인데, 나는 그림을 그릴 생각이 없다. 캔버스를 짜고, 그 위에 몰딩 페이스트를 바른다. 바르고 이쁘게 사포질한다. 만져보고. 다 했다는 느낌이 드는데, 다 한 것 같진 않다. 흑백 요리사에 잘 구운 보섭살 하나 들고 나와 승부하던데. 잘 지은 밥 한 공기를 들고 나가면 어떻게 되지? 짜놓은 캔버스를 보며 기가 막히게 지은 밥 한 공기 같다고 생각한다. 문득 캔버스를 un-짜야한다는 생각. 왁구에 짜고 프라이머를 바른 캔버스에서 타카심을 하나하나씩 뽑은 후 펼쳐보니 참 예쁘다. 문득 이걸 다른 왁구에 re-짜야한다는 생각. 그러면 작품으로 칠 수 있나? stretch, prime, unstretch, restretch. 뭘 한 거지?
이것과 비슷한 일을 요즘에 다른 방식으로도 하고 있었다. 예전에 몰딩 페이스트와 물감으로 캔버스에 완성한 작업들을 자르고 있었다. 길게 잘라 서로 세로로 이어붙여 더 긴 줄을 만든다. 물론 가죽을 바느질하듯 이어 붙였다. 그 긴 띠를 캔버스 왁구에 사용하는 나무(네 쪽 중 하나, 그니까 사실상 그냥 각목 하나)에 길게 붙인다. 벽에 기대어 주루루루 세워 놓고 싶어져서 하나 더 만들었다. (여기서 여전히 질문: 평면 회화는 벽을 필요로 하는가…?) 이 과정도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고, 나무에 붙여 회화라고 주장했던 것을, 다시 해체하여 자르고, 나무도 자르고, 해체한 것들을 다시 이어 붙여, 새로운 것을 다시 만든다. 같은 형식인데, 뭐가 달라졌나? 더 단순하게 해놓고 이것도 회화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 건가? 비빔밥을 비볐다가, 다시 재료별로 골라내고, 조금씩 다시 섞어 김밥을 만든 후, 이것도 비빔밥이다, 말하려는 걸까? 나는 내가 뭘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그럼에도 자꾸 말을 해야 한다. 창인과 주고 받았던 말도 날아갈 거 다 날아 갔고 이상한 것만 남았다. 이상한 걸 더 남기려면 더 말해야 한다.
한나 상에게 답례로 보내야 하는 책을 어떻게 만들지도 계속 고민해 본다. 영수증이면 충분하다. 글이 적혀있고, 접혀서 펼칠 수 있으면 그만이고. 편지도 끼워넣어서. 그럼 영수증을 반 자르고, 사이에 종이를 끼워서 바느질 하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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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 아크릴 미디엄, 흑연, 아크릴 물감, 아크릴 잉크, 왁스 처리된 실, 유화 물감, 알루미늄 판재, 아연 나사, 스테인리스 그로멧,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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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자립의 시도. 여전히 몰딩 페이스트. 여전히 말 더듬기. 말이 있어야 말을 날려 보낼 수 있다.
이제 회화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영수증. 쿠팡이츠. 맥도날드 스티커. 영수증 기계의 머리에서 줄줄이 나와 매달려 있는 영수증들. 나는 어떤 소비를 하는가. 대부분의 영수증은 몰딩 페이스트나 젤 미디엄과 바로 접촉해 버리면 잉크가 거의 날아가 버린다. 왜? ph 때문에? neutral ph adhesive를 사용하면 전혀 날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adhesive와 몰딩 페이스트를 2:1의 비율로 섞어 첫 겹을 쌓기 시작했다. 말을 얼만큼 날리고 얼만큼 남길지 정하기.
요리. 라이언이 내 그림 중 하나를 보고 이건 이제 팔레트로 사용하라고 했던 게 생각난다. 마구 조지기. 의도된 행동보다 자연스러운 흔적이 더 필요할 때. 이것저것 붙이며 그리던 그림에 프레퍼스에서 포장한 청양 들기름 파스타 간장 소스를 쏟은 뒤, 그 그림은 팔레트로 사용하기로. 예림이와 만든 간장 양념의 돼지 목심 위에 청양 고추를 가위로 잘라 뿌렸다. 튀어나온 고추 씨앗 다섯 개. 다운타우너 햄버거의 참깨 빵에서 떨어져 나온 참깨 12개. 자취생이 사 놓은 양파에는 필연적으로 싹이 튼다. 양파싹 송송 썰어넣기. 이것들을 붙이고 몰딩페이스트로 덮고. 이 행위는 영수증으로 내가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껴진다.
창인과 최근에 했던 대화. 개념과 욕망이 있다고 하자. 우리는 욕망을 설명하기 위해 개념을 만들려고 애쓰지만 여전히 개념의 그물에 걸리지 않은 (혹은 그물망 사이로 삐져나오는) 욕망이 있다고 느껴진다. 결국 개념을 포기한다. 그래서 우리는 언어를 사용해 말을 붙였다가 결국에는 말을 다시 추상화하는 식의 행동을 해 왔다. 번역의 포기, 구린 번역도 비슷한 느낌. 개념에 비관하여, 개념을 해체하는 것을 긍정하기. 언어하기. 나는 물질을 포기할 수 없다. 우선 말을 열심히 붙인 후, 붙였던 말을 싹 지우고 나면 결국 물질이 남는다. 물질을 육체로 감각한다. 물질은 욕망인가? 우선 창인이 사용한 욕망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다만, 내가 [말과 물질]로 나누어 생각하던 것을 창인은 (얼추) [개념과 욕망]으로 생각해 오고 있었다는 것. 그렇다면 [말]과 [개념]이 닿아있는 방식으로 (얼추) [물질]과 [욕망]도 닿아있는 것 아닐까. 아무튼 우리의 결론. 말을 붙인 후에야 말을 지울 수 있다.
오늘 캔버스를 하나 짜면서 생각했다. 물질이 좋다.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준비를 하기 위해서 캔버스를 왁구에 스트레치 하고, 그 위에 프라이머를 여러겹 바른다. 이건 그림을 그리기 위한 준비과정인데, 나는 그림을 그릴 생각이 없다. 캔버스를 짜고, 그 위에 몰딩 페이스트를 바른다. 바르고 이쁘게 사포질한다. 만져보고. 다 했다는 느낌이 드는데, 다 한 것 같진 않다. 흑백 요리사에 잘 구운 보섭살 하나 들고 나와 승부하던데. 잘 지은 밥 한 공기를 들고 나가면 어떻게 되지? 짜놓은 캔버스를 보며 기가 막히게 지은 밥 한 공기 같다고 생각한다. 문득 캔버스를 un-짜야한다는 생각. 왁구에 짜고 프라이머를 바른 캔버스에서 타카심을 하나하나씩 뽑은 후 펼쳐보니 참 예쁘다. 문득 이걸 다른 왁구에 re-짜야한다는 생각. 그러면 작품으로 칠 수 있나? stretch, prime, unstretch, restretch. 뭘 한 거지?
이것과 비슷한 일을 요즘에 다른 방식으로도 하고 있었다. 예전에 몰딩 페이스트와 물감으로 캔버스에 완성한 작업들을 자르고 있었다. 길게 잘라 서로 세로로 이어붙여 더 긴 줄을 만든다. 물론 가죽을 바느질하듯 이어 붙였다. 그 긴 띠를 캔버스 왁구에 사용하는 나무(네 쪽 중 하나, 그니까 사실상 그냥 각목 하나)에 길게 붙인다. 벽에 기대어 주루루루 세워 놓고 싶어져서 하나 더 만들었다. (여기서 여전히 질문: 평면 회화는 벽을 필요로 하는가…?) 이 과정도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고, 나무에 붙여 회화라고 주장했던 것을, 다시 해체하여 자르고, 나무도 자르고, 해체한 것들을 다시 이어 붙여, 새로운 것을 다시 만든다. 같은 형식인데, 뭐가 달라졌나? 더 단순하게 해놓고 이것도 회화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은 건가? 비빔밥을 비볐다가, 다시 재료별로 골라내고, 조금씩 다시 섞어 김밥을 만든 후, 이것도 비빔밥이다, 말하려는 걸까? 나는 내가 뭘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그럼에도 자꾸 말을 해야 한다. 창인과 주고 받았던 말도 날아갈 거 다 날아 갔고 이상한 것만 남았다. 이상한 걸 더 남기려면 더 말해야 한다.
한나 상에게 답례로 보내야 하는 책을 어떻게 만들지도 계속 고민해 본다. 영수증이면 충분하다. 글이 적혀있고, 접혀서 펼칠 수 있으면 그만이고. 편지도 끼워넣어서. 그럼 영수증을 반 자르고, 사이에 종이를 끼워서 바느질 하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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